티스토리 뷰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Maria de los Santos Gorrostieta Salazar)는 당시 33세의 나이로 멕시코 DF 티키체오라(Tiquicheo, Michoacan)라는 인구 규모 1만명 남짓되는 작은 소도시의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비록 작은 소도시였지만 한 도시의 시장이었던 그녀가 재선에 실패하면서 이후 멕시코 카르텔로부터 살해당했다. 여자의 몸으로 연약하지만, 무모하게 용감했던「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의 최후는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멕시코 DF 티키체오라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선거운동중인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


(멕시코 DF 티키체오라시의 시장으로 근무할 당시의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Maria de los Santos Gorrostieta Salazar)는 시장이 되기 이전 2006년 부터 멕시코 DF 티키체오라(Tiquicheo, Michoacan)시의 시의회 시의장까지 겸임으로 지냈던 여성이다. 2008년에는 티키체오라(Tiquicheo, Michoacan)시의 시장으로 당선 되었다. 당시 티키체오라시는 마약 카르텔의 무장한 범죄자들로 인해 마약과 절도, 강도, 강간, 총기사고 등 강력 범죄가 끊이지 않을 만큼 치안이 무척 좋지 않았던 이곳의 범죄률을 낮추기 위해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지역의 카르텔은 그런 그녀에게 접근하여 자본과 안전, 미래 권력에 대한 달콤한 제안으로 협상을 시도하지만, 고향을 결코 마약 카르텔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그녀는 카르텔의 제안을 거절하기에 이른다. 또한 그녀는 공식적으로 카르텔을 뿌리 뽑겠다고 사회에 공언하기에 이른다.


(첫 습격을 받기 직전「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와 전 시장이자 남편인 「호세 산체스(Jose Sanchez)」)


카르텔과 전쟁을 선포하고, 완전히 등을 돌린 이후 그녀는 총 세번의 습격을 받게 된다. 카르텔의 첫번째 습격은 2009년 10월 15일 그녀가 남편「호세 산체스(Jose Sanchez)」와 차량으로 이동하던 무장갱단으로 부터 총격을 받게 되고, 그로인해 그녀의 남편 「호세 산체스(Jose Sanchez)」는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된다. 또한 그녀는 여러발의 총격을 받았지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멕시코 카르텔로 부터 첫 습격을 받았을 당시 총상 모습 / 남편 사망)


 

(좌: 첫 습격당시 엠블런스에 실려가는 모습 / 우: 엠블러스에서 응급조치후 병원으로 이송)


이후, 그녀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부상한 몸을 보여주며, 더욱더 강력한 어조로 카르텔의 뿌리를 기필코 뽑아버리겠다고 말하였다. 연방정부에 경호를 요청하였고, 연방정부에서 경호원을 배치해주게 된다. 그리고, 2010년 1월 첫번째 습격으로 부터 불과 3개월만에 그녀는 게레로 알타미 라노(Altamirano City, Guerrero)시 공사 행사에 참가한 이후 카르텔로 부터 두번째 습격을 받았으나 총격 부상만 당하고, 다행히 목숨은 잃지않았다. 당시 공사현장의 작업자 두명과 여성 기자 두명이 심각한 부상을 당하였다.


(멕시코 카르텔로 부터 두번째 습격을 받았을 당시 사진)


(두번째 습격이후 시장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고 인터뷰하는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는 두번째 암살시도를 당한 이후,「그들이 아무리 나를 살해하려고 해도 난 3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그들의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사퇴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발표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본인, 가족이 안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차지하는 것은 남녀, 여성, 노인, 아이, 그리고 그들의 영혼에게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빵 한조각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책임 입니다.」라고 말했다.


 

(좌: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 생존당시 모습 / 우: 살해된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


하지만, 카르텔은 2012년 11월 드디어 그들의 임무를 완수하게 된다. 그녀는 카르텔의 선거 방해로 시장 재선을 실패하게 되고, 자신이 속해 있던 제도 혁명당(PRI)에 출마를 하겠다고 하였지만, P.R.I에서는 그녀의 출마를 허가하지 않고, 버려지게 된다. 또한 연방정부에서 지원해주던 경호원들도 모두 철수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후 그녀는 초등학교에서 자녀를 데리고 오는 길 카르텔에게 납치당하게 되고, 그녀는 납치한 그들에게 결국 굴복하여 딸의 안전을 보장받았지만, 그녀는 결국 죽음의 신(Dream Ripper)를 피해가지 못했다.


(그녀는 납치후 감금, 고문 후 5일뒤 발견되었다.)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는 2012년 11월 10일 납치되었고, 5일 뒤인 11월 15일 오전 8시경【El Chupadero】로 알려진 지역에서 주변의 노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녀의 시신은 육안으로 봐도 고문의 흔적이 강렬히 남아 있었다. 당국의 부검 결과 그녀의 직접적인 사인은 머리 뒤쪽에 둔기로 여러차례 내려친 것이 사인이며, 온 몸에 찰과상과 성폭행 등 잔인한 고문이 있었다고 보고 하였다. 당국은 그녀를 살해한 동기와 피의자의 신원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 집권당시 멕시코 카르텔과의 전쟁에서 체포된 카르텔 조직)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는 펠리페 칼데론 (Felipe Calderon / 2006 ~ 2012.11 제 56대 멕시코 대통령) 전 정부 정부가 6년 전 마약 조직 소탕 작전을 시작한 이해 멕시코에서 살해 된 20명의 소도시 시장 중 한명이 되었다. 현지 경찰은 이들의 살해 동기가 여전히 불투명 한 상태라고 말하고 있지만, 현지 공무원 살인 사건의 대부분이 고군분투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이며, 마약 조직이 활개치는 지역에만 근무한다고 지적한다.


멕시코 마약 거래업자들로 부터 얻은 돈은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는 것처럼 보였으나 2010년 여러 지역의 시장, 경찰 청장, 지역 카르텔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지원하던 당국자들이 대거 체포되어 기소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혐의 대폭 감소하게 되었다.



  리뷰를 마치며..


멕시코 카르텔 만행은 셀 수 없이 많고,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데요. 이번 멕시코 카르텔 여시장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María de los Santos Gorrostieta Salazar)에 대한 해외의 여러 매체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해서 작성하였습니다. 작성하면서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고, 무언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 내용이었습니다.



먼저 「마리아 산토스 고로스티에타」는 노예남편과 동갑인 1976년 용띠로 본래 의학을 전공했던 여성이었습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여성이 다른 삶속에서 비참하게 죽은 것을 보니, 차마 남의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감정도 있습니다. 그녀는 의사로 교육을 받고, 언제나 원칙을 지키고, 사회 공헌에 적극적으로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결국 지역 사회에 큰 공헌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제도 혁명당에 가입하고, 2008년 ~ 2011년까지 멕시코의 작은 시골마을의 시장을 하게 되었지요. 그녀는 시장이 되기 이전부터 시장이 되고 나서도 뇌물을 절대 거부하고, 모든 시간을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수 차례의 암살 시도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농민과 목장 일꾼, 학생들을 일일히 만나면서 긍정적인 정책을 펼쳤다고 합니다. 그녀는 티키체오라(Tiquicheo, Michoacan)에서 태어나 Michoacana de San Nicolás de Hidalgo 대학교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다고 하는군요.


솔직히 이 사건을 대충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을때,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앞뒤 분간이 부족하고, 가족 생사는 생각도 못하며,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여성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런식으로 자신의 삶을 바칠거라면 결혼은 왜 했고, 자녀들은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고도 생각했지요.



살아남은 세명의 자녀들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전후 사정을 보면 또 다른 내용이 있었는데요. 첫번째 암살시도에서 사망한 그녀의 남편「호세 산체스(Jose Sanchez)」가 지역의 전임 시장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녀의 삶을 보면 희생과 봉사, 인내와 신념을 향한 철학이 강했던 여성으로 보입니다. 필자라면 자녀가 있기에 당장의 삶을 위해 그들에게 굴복하였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결코 물러서지 않은 이유는「세 자녀의 미래를 위해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에 대한 보고서는 칼데론(Carlderon) 전 대통령의 상원 의원이자 형제 루이 자 마리아 칼데론(Luisa Maria Calderon)이 그녀의 죽음뒤 발표하였습니다.

댓글쓰기 폼
  • 프로필사진 ㅋㅋ 현실감각이 떨어진다라... 친일파가 독립운동가를 이해할수 없는것과 비슷한 양상 아닐까...ㅋ 2018.09.08 15:41
  • 프로필사진 BlogIcon ㅇㅇ 현실감각 떨어지는거 맞음. 무조건적인 정의감으로 자신이 죽음으로써 카르텔 범죄를 저지할 여지는 전혀 사라졌지. 카르텔 범죄는 뿌리를 뽑기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쪽으로 많이 해결본단다 아가야 2020.12.13 15:28
  • 프로필사진 BlogIcon 아가 ㅇ/ㅈ/ㄹ 하고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 2021.01.02 12:41
  • 프로필사진 BlogIcon ㅇㅇ ㄴㄴ 무슨 저것 때문에 여지가 사라지긴 사라져. 사라지더라도 저 시장 때문에 그게 사라진거냐? 정신나간 카르텔 새끼들 때문에 사라진거지. 말을 똑바로 해야지. 아가 같은 소리하네. 2021.09.10 09:50
  • 프로필사진 Guest 대한민국에도 친일파와 같은 짓을 저지르며위안부들의 고혈을 빨아먹은 인간이 있지요. 정반대의 삶이네요 2020.12.28 10:03
  • 프로필사진 ㅅㅅ 남의 시체사진 올리고 우는 그림 올려놓으면서 조회수 빨아먹으려는 이게 진짜 인간이지 ㅋㅋ 2021.01.22 04:24